카페 버스정류장

나의 시절은-

해떴다 2012. 2. 15. 00:24

 

미장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 나는 항상 길어진 앞머리를 어쩌지 못해하다가 충동적으로(대개는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주로) 머리칼을 자르곤 한다. 이번엔 감기로 앓던 날 밤중에 가위로 머리칼을 잘랐었다. 거울도 보지 않고 머리칼을 한 웅큼 쥐고 싹둑, 또 한 웅큼 쥐고 싹둑.... 잘못 자르면 커트를 하거나 머릿수건을 쓰지 뭐.... 하면서. 그리고 며칠 동안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보며 후회하다가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한다. 나의 파마는 대부분 그런 절차로 하게 된다.

 

동네 어르신들의 단골 파마집인 대구미용실에서 파마를(그러니까 함창에서 첫 파마를) 했다. 어린 날에 엄마를 따라갔던 미장원의 분위기랑 닮은 데다 주인 아주머니의 이미지나 세 분의 할머니들이 똑 같은 롯드로 똑같은 모양의 머리를(사실, 그분들보다 살짝 젊은 우리 세대에겐 이것이 더 개성있는 머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나 역시도 아무런 주문도 하지 않고 말아주세요!’라는 말로 기본 형의 파마를 했다. 머리를 감는 것도 요즘의 미용실들과는 다르게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앞으로 숙여서 헹구는 방식이었다.

인근에 현대적인 시설에 젊은 미용사가 운영하는 미용실도 많지만(미용실이 정말 많다) 나는 어쩐지 이런 전통적인 느낌이 남아있는 곳이 좋다. 게다가 이만 오천 원이라니 가격도 부담이 없다.

중화제를 바르고 난 다음 30분 후에는 롯드를 푸는데 집에 다녀오기도 어중간하여 소파에 앉아 여성중앙을 뒤적이다가 테이블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놓여있는 매니큐어를 손톱에 발랐다. 찻잔을 내미는 손톱이 곱지 않아서 신경이 쓰이는데 바르고 보니 훨씬 깔끔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손톱을 덮은 매니큐어를 견딜 수 없어서 결국 지우고 말 것이다.

 

집에 와서 세수를 하고 스킨을 바른 다음 굽슬거리는 머리를 한 번 더 빗어서 부풀리고 눈에는 검은색 아이라인을, 입술에는 붉은 빛 도는 분홍색 립스틱을 발랐다. 2002년 이후로 내게는 스스로 돈을 지불하고 산 아이라인이나 립스틱은 없다. 도시에서 오는 친구들이 선물했거나 나라가 갖고 있는(나라 것 역시 화장품 가게에서 일했던 친구가 준) 것들..... 그러므로 직접 고른 색이 아닌 것들이다. 내 눈에도 어쩐지 야해 보이는 내 모습이, 내게 결핍된 어떤 것을 보완해 주는 느낌이 들어 좋다. 이런 내가 좀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다가, 똑 같은 음식도 아름다운 접시에 담으면 더 먹음직스러운 것과 같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소줏병을 재활용하여 담은 참기름이나 식초도 고급스런 병에 담으면 '더 나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한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나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더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발라대려 할지도 모른다.

 

예쁘다....는 말은 이제 립스틱의 색이나 액세서리, 옷차림, 미장원에서 손질한 머리모양 등을 말하는 것이니, 이제 나의 시절은 꽃 지고 잎 진 늦가을이다. (다 져 버린 후이니 떨어질 것 없어서 마음이 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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