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버스정류장

무릎을 꿇는 대신

해떴다 2012. 1. 30. 21:51

 

지독한 감기몸살.

호두껍질 같은 뇌 주름에 바늘이 꽂히고

물기 없는 푸석한 피부에 열꽃이 흉하다.

딸아이는 약을 사오고, 먹을 것을 주고, 연탄을 갈아주며 안쓰런 눈빛으로 이불을 끌어 덮어준다. 울컥, 그 존재가 고맙다.

아직 카페 문을 닫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방에서 빠텐으로 통하는 방문을 열어놓고 드러누워 인기척에 대비한다. 성시경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릿속 돌덩이의 무게를 잠시 잊게도 하다가 작은 돌 하나를 슬며시 보태기도 한다.

감기약은 졸음을 불러 올 것이라 아직 뜯지 못하고, 정 많은 이웃이 나누어준 생강달인 물을 거듭 마신다.

 

뜨거운 열기로 충혈 된 눈동자를 식히려 감는 순간, 쇠잔한 아버지의 뒷모습과 쓸쓸히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여윈 손을 만난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하고 돌아눕는 등을 오싹하도록 후려치는 신의 회초리.

 

무릎을 꿇는 대신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저항한다.

 

눈꼬리에 맺히는 눈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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