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우리 가정을 궁금해 하시는 정원이 어머니께-2003.06.08

해떴다 2011. 10. 5. 10:47


<파라다이스 로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연합군 여자포로들이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수용소에서 희망이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포로들이 감옥생활의 절망과 괴로움을 견뎌내기위해 합창반을 만들어 간수들 몰래 조금씩 연습을 하고 드디어는 멋진 합창으로 완성해내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한 지혜로운 여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교사로서의 저의 학교생활도 그랬습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면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궁리를 하는게 낫다는 생각, 한마디로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놀고 월급도 받는' 안정되고 멋진 직장이라는 자위....그래서 스스로 지혜롭게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속의 지혜로운 여인처럼... 
그러나 수용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지만 학교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곳이어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을 올라갈 무렵에 물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를 갈 생각이냐?'라고. 
아이는 '그렇다'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알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워낙 학교생활을 좋아하고 성격도 무난한 편인 아이에게서 그 대답이 나온 것은 당연했지만 한편 무척 아쉬웠습니다. 교직원 자녀라하여 학비가 면제되는 등 경제적인 혜택도 있고 같이 등학교를 하면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학교란 곳이 <자기를 찾는과정>이 아니라 <자기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과, 무엇보다도 <배우고 싶은>에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졸업이 가까워 오면서 아이는 좀 더 깊게 고민을 하는 듯 했습니다. 아침에는 '안가겠다'고 했다가 저녁에는 '가겠다'고 하는 등.... 나와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이 '알았다'였습니다. 그러면서 지원중학교도 써내고 배치고사도 치렀는데 그동안 내내 갈등을 하며 결정을 번복하던 아이는 입학식을 앞두고 드디어 선언을 했습니다. 
'안가<보>겠다'라고-. 그리고 힘들면 복학할 수 있게 조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근히 기뻤지만, '잘 생각해 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며 말리듯 말했습니다. 즉, 아이에게 책임의 무게를 떠넘겼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학과공부를 저는 정서적인 부분을 돕기로 했습니다. 
4개월 후, 팔월에 치른 검정고시에서 중졸 자격증을 따고 아이는 좋아하던 만화를 실컷 보고 그리기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당연히 힘듦과 따분함과 불안함을 동반한) 보냈습니다. 여름의 끝무렵에 한국청소년 문화원(우리가 살던 동네 수련관에 함께 있던 단체)에서 일본 문화원과 공동 주관한 '아시아 청소년 탐험여행'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우리 가족이랑 친하게 지내는 어린이 창조학교 선생님이 권해서 응한 것이었는데 40일간 9개국을 카드연극을 하면서 여행하는 멋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참가비는 일본 단체에서 1인당 200만원을 지원해 주었고 거기서 100만원이 더 할인되어 우리가 부담해야 할 경비는 20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가자격이 사회부적응아였고 학기중에 진행되다보니 시간을 낼 수 있는 학생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녀를 그런 부적응아의 범주에 넣기 싫어하는 부모들의 심리 때문이기도 했다합니다. 우리는 '40일의 아시아 여행? 오예!' 하고 카드 빚을 내어서 등록을 했는데 말입니다. 

일년 후 동생인 한이가 졸업을 했고 누나와 같은 절차를 거쳐서(당시에는 누나를 거의 숭배하기 때문에 예상했던 결과) 진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한이의 졸업을 대비해서 제도권 학교가 아닌 다른 교육 공간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격월간 잡지 <민들레>에 <도시속 작은 학교>에 다니는 유진이라는 학생과 그 어머니가 올린 <도시속 작은학교>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고 그 학교를 찾아가게 된것입니다. 
일단 선생님을 만나 학교 운영 전반에 관한 얘기를 듣고 아이들과 협의한 결과 선생님이 권한 대로 일주일간 학교생활을 먼저 경험 한 후 입학 문제를 결정짓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입학을 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입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개의 부모님들은 그 학교가 공간이 초라하고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이나 환경이 나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그럴것이라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들은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오직 교육 내용과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에 관한 믿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니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할테니까요. 우리의 느낌도 좋았지만 일주일을 다니면서 아이들은 더욱 만족했고 지금은 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딸아이는 어떤 부분에서는 힘들어 했습니다. 특히 언니들이 술담배를 한다는 것이나 진도가 시원하게 못나가는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도 마음을 나눌만큼 정서가 비슷한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것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아이들은 학교의 문제를 선생님과 같이 고민하고 있었고 더러는 사고를 친 형, 언니들을 걱정하고 찾아다니고 우리에게 변명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보기만 했을때와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나름대로의 진실을 가지고 있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갔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아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저희집 상황을 약간만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문경의 빈 집에 깃들어 살고 있습니다. 집은 비워두면 상하게 마련인지라 관리하는 조건으로 무상으로 쓰고 있고 아이들은 부산의 9평짜리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얻을 돈을 아이들이 쓴 셈이지요. 
우리가 귀농한다고 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를 수료할 수 있도록 자취를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는 양산의 집에서 버스를 타고 노포동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에서 내려 조금 더 걸어가야하는 곳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버스가 만원일때라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부모의 귀농보다는 자신들이 자취를 할 생각에 더 들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달에 20만원을 보내면 큰 아이가 12만원을, 작은 아이가 8만원을 가지는데 이것은 본인들이 결정한 것입니다. 학교다닐 지하철비를 충전한 다음은 서로 조금씩 내어 먹을 것도 사고 필요한데 씁니다. 때로 다른 사정이 생겨서 청구를 하면 큰 이의 없이 보내주는 편이지만 그런 경우는 무척 드뭅니다. 매월 학비 5,000(오만원이 아님)원은 본인들의 용돈에서 냅니다. 그동안의 살림살이를 보면 큰 아이는 늘 바닥이 드러나게 쓰고 작은 아이는 그 돈도 남깁니다. 추측컨대 게임시디를 사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큰 아이는 대부분의 돈을 만화 교구를 사거나 월간 만화 잡지를 사는데 씁니다. 쌀은 처음에 스스로 구입해 먹었으나 지금은 우리가 갈 때 여기서 사서 들고 갑니다. 아마도 영양면에서 부실할 것이 틀림 없지만 늘 잘 먹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우린 아이들이 온 세상 청소년들의 평균치를 웃도는 식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과한 것 보다는 모자란게 낫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아이들 생각엔 2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현재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금을 조금 주고 아이들은 '스스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청소며 정리정돈의 문제가 심각합니다만 친정어머니를 반면교사로 삼으니(친정어머니가 다니러오면 집안 꼴을 보고 못견뎌하시고 치워주신다거나 하므로 그게 무척 싫었음) 모른척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문제에(예-학교에서 수련회나 여행을 간다고 할 때 제대로 챙겨갈까? 늦잠자서 지각은 안할까?) 부딪힐 때마다 결론은 <믿자>입니다. 남편의 18번은 '내비둬~' 입니다. 

교육을 포함한 아이들 문제에 관한 우리의 관점은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 행복한 사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아는-, 자기를 잘 알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사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깁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무슨 상장을 받아오면 '야~ 좋겠다'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형편없는 시험점수에 대해서는 '속상하겠다'라고 말했지요. 그런 태도를 취했던 이유는 그것은 '너의 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큰 아이는 만화를 작은 아이는 연극을 전공하고 싶어합니다만 정말 그 길로 갈 것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봅니다. 현재 큰아이는 일본만화를 읽기위해 일본어를 독학하고 작은 아이는 채플린전기를 매일 들여다봅니다. 다만, 어떤 것이든 배우는 일이 즐겁고 기쁜 것임을 체득한다면 그 힘으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남들이 '별나게 키우더니 겨우 구멍가게 하네?'라고 할 날이 있을 지 모르지만 아마 그 문방구주인은 골목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만화도 그려주고 노는 날에는 공연도 보러가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한국의 정서를 '한'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런 '한'을 갖고 싶지도 남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내 방식대로(돈은 들지 않고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효도하고, 아이들에게는 '우리 때문에 못해 본 것 없고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해 본, 끝내주게 행복했던 엄마'가 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