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혜련(나의 벗들)에게/2003.06.18

해떴다 2011. 10. 5. 10:47


남편은 논매기 나가고 나는 잡초가 우거진 노는 땅을 고르느라 괭이를 들고 땅과 씨름을 합니다. 온갖 새소리와 소 울음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겁없이 지나 다니는 다람쥐들의 호들갑스러운(정말 하는 일 없이 바쁜척 하는놈들) 움직임에 반해 정신을 놓기도 하면서-. 

초기에는 '귀농한 소감이 어떠냐'는 물음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호들갑을 떨었으나 지금은 좀 다른 대답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최고의 인간이 된 것을 매순간 느끼며 산다'고-. 
그것은 내가 자연인으로서 온갖 동식물들과 산과 들.... 대지의 품속에서 살아도 좋다는 것을 허락받은 순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락한 이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 충족감을 더욱 크게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벗어버릴 수 없었던 옷들과 신발들, 하루 온종일 나를 데리고 다녔던 시계와도 만날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것들은 바로 내곁에 아직도 내 것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내가 필요로 할, 아주 드문 순간외에는 소용없는 물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나를 둘러 싼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는 해도 완전한 자유를 맛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어쩌면 더 낯설고 당황스런 관습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니까요. 그동안의 시간들-벌써 열 달을 넘는 짧지 않은 시간들-을, 마치 처음 중학교에 입학하여 선생님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는 어린 학생처럼 긴장한 가운데 보냈으니까요. 그러나 꼭 어려움으로만, 낯선 관습으로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래의 나 자신인 어른들을 뵈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당신들의 삶이 실패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보이려는 행동이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승화되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고, 실제로 저의 불순한 의도는 전혀 들키지 않은 채 오히려 많은 은혜를 입고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은 농사에 마음을 내기보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앞마당에 서서 앞산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거나 하늘과 시내와 너른 들판을 온통 내 정원이라고 생각하면서 휘둘러 보는 일을 통해서 제가 가진 영원한 부동산-죽을 때까지 팔 수 없어서 잃을 염려도 없는-의 규모와 가치에 만족한 미소를 짓는 한심한 귀농자입니다. 이런 나와의 동업을 포기한 채 매일 품앗이며 논일을 나가는 남편이 있어 귀농운운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사실은...... '자연의 아름다움' 운운..하며 좋아만 하다가 언제 까마득히 추락하고 말 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 
모두들 겁내는 그 <노동>의 한복판에서 죽은 시체도 일어나서 동참한다는 농번기의 진통을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정원이 지금처럼 푸근한 미소만 짓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비바람이 언제나 잔잔하지도 않을 것이며, 한여름의 모기와 풀벌레, 말벌의 공격, 그리고 이슬이 촉촉한 풀 숲에는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도 모를 독사가 숨어 있기도 할 것이니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의 상징인 태양과 비바람의 잔혹한 공격에 온 가슴에 멍이 들 날과 만나게 될 일도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인간'이 되었음을 기뻐하는 이유는 앞에도 말했듯이 자연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입니다. 

오늘도 나는 자연이 되어 괭이로 땅을 파고 흙을 부드럽게 다지면서 내 얼골을-거울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 '얼의 꼴'을-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일구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