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우리교육 원고 - 나의 발자국공책 /2009.09.21

해떴다 2011. 10. 5. 11:11

"나의 발자국 새기기 "─ 공책으로 하는 학급운영

몇 년 전부터 학급운영에 "자기 관리" 공책을 활용해 보았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알림장을 보고 준비물도 챙기고 숙제도 하는 것을 보고, 또 선생님이 검사를 하니까 한 공책에 꾸준히 쓴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응용해 본 것이다.

중학생쯤 되면 스스로 알아서 숙제며 준비물을 적어 가긴 하지만 검사를 안하니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적게 되고 메모 습관이 안 된 아이들은 머리로만 기억하는 등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보다 배우는 과목도 많고 선생님도 여러 분이니 기억해야 할 내용들이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자기 관리" 공책이었다. 처음엔 반장이 준비물이나 숙제를 칠판에 적고 담임은 전달 사항을 적어 주는 데 그쳤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활용도가 높아져 따로 관리하던,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공책이나 "학급 역사"를 기록하는 공책이 필요 없게 되었다. 매일 일일이 읽어 보니까 전달 사항을 잊지 않게 하려는 처음 의도에다 덤으로 상담이며 개인 지도의 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또, 일년 동안 잘 기록하면 자신의 생활이 그대로 담긴 흔적이 되는 것을 보고, 지난해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서 시도해 본 것이 <나의 발자국> 공책이다. 즉 자신의 흔적을 "잘 남기도록" 지도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아침에 등교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나의 발자국> 공책을 내는 일이다. '선생님! 내 발바닥(!) 제일 늦게 읽어보세요!' 하며 아래에 밀어 넣기도 하고 공책 사이에 껌을 하나 넣었다고 말해 주기도 한다. 조례가 끝나고 부반장(혹은 모둠장)이 교무실로 가지고 와서 내 책상 위에 얹어 두면 수업이 빈 시간 중 오전의 한 시간은 공책 검사로 보낸다. 빈 시간에 공책 검사를 하는 일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효과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수고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남긴 쪽지를 읽고 답하는 일도 반복되면 어려움보다 재미가 더해 가고 여러 날 쪽지를 남기지 않는 무덤덤한 학생에겐 "너 머리 잘랐네? 영화배우 같애!", 혹은 "정모는 바보래요. 실내화 신고 매점 가다가 체육 선생님께 혼났대요!"라고 관찰한 내용을 적거나 "경호 얼간이! 메롱!" 등 괜한 장난을 걸어 보기도 한다. 공책을 보며 빙긋이 웃을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토요일에는 일주일 동안의 생활을 평가하고 주요 행사를 돌아보는 쪽지를 써서 아이들의 글 밑에 붙여 주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부모님이나 학생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오려 두었다가 복사해서 붙여 주거나, 짧은 시며 함께 배우고 싶은 노래를 붙여 주기도 하고, 장래 희망과 관련하여 관련 기사를 개별적으로 붙여 주기도 하였다.

조․종례 때 훈화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하게 되면 꼭 새겨듣도록 하는 편이다. 그럴 때도 이 공책을 활용하니 좋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다 들은 후에는 시간을 좀 줄 테니 들은 말을 요약해서 써라. 최소한 다섯 줄 이상이다!' 이렇게 정리하게 하였다. 다음에 같은 훈화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의 발자국 ○월 ○일에 쓴 내용을 읽어 봐. 그 때 얘기했는데도 잘 안 지켜지니까 오늘 또 얘기하게 되는 거야.' 하고 다시 훈화하였다.

또, '선생님! 짝 좀 바꿔주세요! 내 짝은 주변을 너무 어질러요!' 등 짝에 대한 불만이 많이 나오면 종례 시간에 공책을 펴게 하고 '자! 시험 친다. 문제의 답을 적어라!' 한 다음, "이런 짝을 원한다", "이런 짝은 싫다"라는 문제를 주고 각각 10가지씩 열거하게 한 다음 자신에게 해당되는 항목을 표시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표시한 소감을 쓰게 하면 "자신도 문제가 있는 짝"임을 알게 된다. 그래도 건의한 당사자에게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잘 듣고 참고해서 조치해 준다. 이와 같은 방법은 질문의 문항만 다양하게 바꾸면 소풍이나 학생회장 선거 등 여러 행사에 조금이나마 "자각(自覺)"의 과정을 거친 후 참여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타 학급 행사나 회의 후에는 소감을 정리해 보도록 하는 등 그날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지나간 발자국"을 다시 읽어 보게 하여 자신의 첫 마음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였다. 점점 두꺼워지는 공책을 보며 우리가 보낸 시간의 두께와 앞으로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면서.

해마다 바뀌는 아이들이건만 생김새며 성격, 버릇이며 목소리가 하나같이 다름에 창조자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교사의 가르침에 반응하는 모습도 제각각인데, 또 다른 한 인간에 불과한 교사의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이 "다름"을 잘 파악하는 일이다. 하지만 바쁜 일과에 쫓겨 허둥대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눈에 띄는" 학생 외에는 내면은커녕 외면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년이 끝나 버린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어야 하는 정의의 개념은 학급운영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꽃이나 차가 아니라 각자의 색과 향기를 지닌 동등한 인격적 존재이다. 그러니 "얌전해서 좋다", "자기 주장이 분명해서 좋다", "게으르니 싫다", "눈빛이 맘에 안 든다"하고 평을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지도하는데도 "차별 대우" 운운하며 교사를 비난하는 일이 더러 있는데, 이는 "다름"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며 그에 따른 해결 방법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담이나 훈화를 통해 애를 써 보다가도 다른 많은 일거리들에 부딪치면, 이런 경우는 "늘 있기 마련인 사소한 일"로 넘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발자국>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을 꼽으라면,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이 가진 "다름"에 대해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챙겨 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잘 드러나지 않는 보통의 아이들에게 ─.

아쉬운 점이라면 아이들이 믿고 기대한 만큼의 응답을 하기엔 시간과 능력이 충분치 못했다는 것, 미처 표현하지 못한 여백의 공간에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내딛는 발자국은 더 선명하고 자신 있게 새겨갈 수 있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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