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고등학교 연극반 아이들의 부름을 받고-/2004.11.21

해떴다 2011. 10. 5. 10:53

풍산고등학교 연극반 반장 향민이가 축제에 올릴 공연을 좀 손봐 달라고 해서 안동에 다녀왔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연습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 7시부터 9시 까지 다시 만나서 연습을 했다. 아이들이 같이 급식소에서 밥을 먹자고 했지만 나는 친구를 좀 만나겠노라고 얘기를 하고 시내(?)로 나와서 목욕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밤을 이곳에서 자고 내일은 안동 하회마을을 구경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승희씨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로운이가 간디학교 시험에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너무 서운할 것 같아서 그 집 식구들과 저녁도 먹고 술도 한 잔 할까 한다’는 것이었다. 2차 면접까지 무난히(?) 합격을 한 상태이고 마지막 추첨만 통과하면 다 된 거라고 했는데 그만 추첨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밤늦게나마 가은에 도착하면 장선생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로 하였다. 


목욕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가려는데 그만 길을 잘 못 들어서 헤매게 되었다. 그래서 수퍼에 들어가 마실 것을 사면서 물어보았다. 
“풍산 고등학교가 어디쯤에 있어요?” 
“아, 이 길로 쭉 올라가면 오른쪽에 보여요, 학생 만나러 가세요? 애가 거기 다니나 봐요” 
“아니요, 연극반 애들 연습하는 거 봐 주려고 왔어요” 
“거기 연극반 같은 거 없을 텐데........ 신설학교라서 기반 다지려고 공부 시~게 시켜요. 지금 2학년 애들 수준이 장난 아니거든요” 
“그럼 풍산 중학교 애들은 이제 다 풍산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하겠네요?” 
“하이고, 몇 년 전에는 아이들이 아무도 안가서 미달이었는데 지금은 성적 어지간한 애들은 못 들어가요. 전국에서 오거든요” 
“투자도 많이 하나 봐요, 많은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실내도 아주 고급으로 꾸몄던데요” 
“그럼요, 투자도 많이 하고 이제 곧 이름을 날릴 거예요” 
“네.......” 

학교로 와서 양치질을 하려고 교사 화장실로 가 보니 자재들도 고급으로 써서 세면기며 바닥도 아주 산뜻하였다. 특히 변기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서 일어나기가 싫을 정도-^^ 
아이들과 연습을 하기로 한 보건실도 침대며 의자 탁자, 가리개 할 것 없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동아리 활동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서 불만이라고 했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거지, 우리도 다 열악한 속에서 했어”하며 소품 준비를 좀 도와주겠다고 했다. 

밤 열한 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느라 불이 환히 켜진 학교를 보니 정말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우리가 연습을 하는 본관 건물은 거의 불이 꺼져 있어서 맘껏 웃고 게임도 하면서 실컷 웃었다. 
‘남들 공부 할 때 당당하게 딴 짓을 하는 기분’은 예전의 아이들이나 지금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로 무척 달콤한 것임을 알기에 귀한 연습시간이지만 연극연습을 하며 보내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간식을 사러 간 향민이가 붕어빵과 만두국을 사 가지고 돌아왔기에 ‘간식도 먹고 놀다가 시간되면 기숙사로 가라’고 하며 일어섰다. 

“선생님! 멀리서 오셨는데 저희는 아무것도 못해드리고....... ” 
반장이자 연출인 향민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배웅을 나왔다. 
“니들보다 내가 더 즐거웠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니들이 너무 잘 만들어 놓아서 손댈 것도 없고 내가 한 게 없는 것 같아”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애들이 선생님 되게 기다렸어요, 언제오시냐고 맨날 묻고....... 그냥 와서 봐 주신 걸로도 우린 굉장히 큰 힘을 얻었어요, 모두들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고맙다” 
그래도 뭔가 물질적인 보답을 못해서 맘이 안 편한 향민이의 맘이 보이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말했다. 
“난 너무 좋았어, 나 이런 거 디기 좋아해”라고-. 
사실이다. 이렇게, 어른들과는 상관없이 아이들과 만나 밤늦게 연극연습도 하고 게임도 하며 보낸 밤을 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월 초,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연극특강을 하였던 것이 전부인 이 아이들과 이렇게 많이 가까워 진 것이 너무 행복하다. 노인대학 학장님과 의논해서 이 아이들이 축제 끝내고 이곳으로 수련회를 올 수 있도록 주선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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