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오래전 양산 상담교사 연수에서 강의 원고

해떴다 2015. 11. 14. 19:52

 

놀이예찬

 

5월 15일 스승의 날, 오랫동안 담임을 해 온 탓에 많은 아이들의 전화와 방문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학교는 ‘배움의 터’ 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 중 누구도 열심히 공부했던 일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았다. 함께 여행을 갔던 일, 소풍이나 야유회, 학교축제에 관한 기억 등 그 모든 얘깃거리는 <놀았던> 일에 닿아있었다. 그 모든 행사에 놀이계획을 잘 세우고 꼼꼼히 준비해 간 경우에는 인솔하는 나 역시 기대감과 설렘으로 즐겁게 행사를 맞이할 수 있었고 결과도 늘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잘 놀고 난 후의 만족감으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두 뺨을 볼 때는 내가 선생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남들이 들으면 ‘선생이 무슨 애들 놀리는 사람이냐?’고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잘 자라는’아이들은 ‘잘 노는’아이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언제부턴가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과 ‘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진 것도 한 원인이 된 것 같다. 그것도 내가 바빠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바빠서.....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일과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한다. 그것도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경우보다 부모님의 선택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예전처럼 방과후에 생일잔치를 하거나 모둠별 연극경연대회 같은걸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그런 행사를 한다고 해도 학급회의 시간을 쪼개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등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사실 자신이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이라면 난들 왜 속이 상할 것인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상술과 잘못된 교육열에 보조를 맞추면서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그런 억눌린 배움으로 인한 긴장을 푸는데는 컴퓨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밤이 깊도록 채팅을 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느라 아침에는 하품을 입에 달고 등교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아이들에게 조례시간이나 종례시간에 교사가 애써 전달하는 말이나 가르침은 지루한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교사는 더욱 절망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나의 경우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조종례를 통한 <놀이>활동이다. 조례 때는 빙고나 퀴즈, 혹은 동작이 작은 게임들을 하거나 책 읽어주기, 가사가 아름다운 노랫말 익히기 등 다른 반에 피해가 가지 않는 내용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종례 때는 시디나 테이프를 이용해서 노래 뿐 아니라 신나는 율동을 함께 배운다. 3월초에는 종례만 끝나면 빨리 보내달라고 아우성이던 아이들이 지금은 종례 시간을 기다리고 즐기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배움의 기쁨에 충만한 아이들이라면 <놀이>에서 위로 받을 필요가 없겠지만 배울수록 자신에게 절망한 아이들이기에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는 <놀이>의 치유효과가 더욱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는 친구조차 경쟁의 상대로 여겨야 하는 현실에서 격의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놀이>야말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아름다운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언제나 <오늘은 어떻게 놀지?>하는 것이다.

 

 

상담원과 놀이

상담원들의 경우 일상 생활 속에서의 만남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을 통해서거나 관련행사를 통해 아이들을 만난다. 그래서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의 많은 부분을 친화의 과정에 쓰게 될 것이므로 더욱 놀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놀이야말로 그 어떤 수단보다 나은 <마음열기>행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낯선 사이라도 놀이에 몰두하는 동안 서먹서먹한 감정이 많이 사라지고 놀이과정에서 웃음을 주고받게 된다. 즉 놀이를 통해 낯선 상황에 대한 긴장과 경계심이 풀어져서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일단 경계심을 풀면 어른들에 비해 더 쉽고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편이기 때문에 잘 놀게되는 순간에 이미 상담의 많은 부분이 진행되었다고 본다면 나의 지나친 <놀이예찬증(?)>일까? 사실 놀이는 그 형태도 종류도 무궁무진하게 많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 <노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까닭에 점점 잊혀져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상담실 등 관련 단체들이나마 <놀이>를 지키고 살려내고 보급하는 일을 소중히 여겨주길 간절히 바란다.

건전하고 아름다운 놀이를 통해 밝고 높은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청소년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미래도 더욱 밝아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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