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위한 질문

첫번째 질문

해떴다 2015. 11. 14. 20:44

질문을 위한 질문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독립적인 자녀로 키우기>란 주제의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 중에 ‘관련도서 읽기’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간접경험의 한 방법이라고 했더니 누군가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 발끈 하는 목소리를 냈고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자신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게 인생의 목표였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고, 또, 읽은 내용을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하나 뿐인 아들을 바보로 만들었고 너무나 화가 나서 그 책들을 모두 불 질러 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발끈하는 이유를 바로 알아챘고 이글이글 불타는 책들을 보며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을 눈물까지를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읽었다는 책들이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엄마의 욕망을 반영하여 선택된 책들은 <일등> <영재> <명문대학> <성공> 등의 단어가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자녀교육에 관한 엄마의 지식과 노력이 더해 갈수록 아들은 자발성과 생기를 잃어갔을 것이며 드디어는 본성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지킬 수 없었으리라.

그리하여 아들은 자포자기하고 무기력한 태도를 방패로 엄마의 욕망을 방어하고, 당황한 엄마는 그제야 원인분석에 돌입할 것이다. 그 결과, 아이의 문제가 실은 자신의 문제였으며 자신의 문제는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원인 분석의 결과로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는 대신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낸다는 데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그만의 본성이 있다. 식물만 보더라도 진흙 속에서 잘 자라는 종자,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종자,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종자, 물을 한 달에 한 번만 주되 듬뿍 줘야 되는 종자, 햇볕에서 잘 자라는 종자, 그늘에서 잘 자라는 종자가 있다.

피는 시기도 다르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이 있다. 생명력도 달라서 일년생인 것도 있고 다년생인 것도 있고 헤아리기에도 버거울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내는 것도 있다. 적절한 시기에 옮겨심기가 필요한 종자가 있고 자리를 옮기면 좀처럼 살리기 어려운 종자도 있다. 향기도 모양도 쓰임새도 제 각각이다.

한 생명의 성공적인 일생은 그에게 맞는 토양에 심겨져 알맞은 보살핌을 받고 그 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으며 제게 맞는 쓰임새를 갖는 것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일러 무엇할까.

유전인자를 통해 일부 추측할 수 있을 뿐 아이가 지니고 있는 종자의 본성을 아는데 까지는 꽤 세심한 주의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발아점이 늦건 빠르건 대개는 학령기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지식만을 배우자고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과다의 사회에서는 학교를 대치할 방법도 많다.(그래서 요즘은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 아이에게 선생님의 보살핌아래서 또래들과 함께 보낸 시간과 경험들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자산이다. (이것이 학교를 안 보낸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학교는 다수를 효율적으로 돕기 위해 존재하므로 그들에게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대신 하나의 교육목표에 모두를 줄 세운다. 그 결과 사냥꾼의 재빠른 몸놀림을 가진 아이나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언젠가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할 인내심을 가진 멋진 아이들이 산만한 아이나 부진한 아이로 분류되고 만다. 그 문제를 가장 절감하는 이는 선생님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도 정해진 틀 속에서 사냥꾼과 거북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마술사는 아니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마술사가 되고 싶을까, ‘목마른 사슴이 물을 마시듯 배워라, 얍!!!’)

“자, 학교는 아이의 성장발달에 가장 효율적인 장이다. 그런데 내 아이의 본성은 사냥꾼이거나 거북이인 것 같다. 혹은 아직 발아하지 못한 채 학령기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선생님도 마술사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학교를 보내는 것도 안 보내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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