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빈 집에 깃들다' 관련글

첫 번 째 원고 청탁

해떴다 2011. 9. 25. 14:03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서 전화가 왔다.

빈집에 깃들다를 내고 첫 원고 청탁 전화였다

주제는 '앞산과 뒷산에 얽힌 이야기'

 

언니의 갈빗단

 

 

 

우리 아버지는 작은 시골의 우체국장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우체국 사택에서 살았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주변은 온통 꽃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체국 입구의 돌계단 양쪽으로 피어있던 채송화무리, 담장을 대신하여 나란히 줄지어 서 있던 칸나들, 온갖 종류의 국화꽃 무리들과 겨울에도 푸르던 사철나무들. 그 위로 흰 눈이 내려앉던 모습이 어제인 듯 떠오른다.

 

내겐 언니가 둘이나 되었고 오빠도 있고 남동생도 있고 돌아가신 삼촌의 딸인 여동생도 있었다. 그 중 나와 가장 밀접하게 지냈던 사람은 내가 일 학년 때 오학년 이었던 작은 언니였다. 작은 언니는 나의 긴 머리를 빗어서 모양을 내고 예쁜 옷을 입히는데 정성을 들인 다음 후다닥 자신의 채비를 마치고 내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니는 빨래가 담긴 다라를 이고 내게 비누곽을 들린 채 빨래터로 갔다. 언니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도 곁에서 수건 따위를 치대곤 했는데 언니는 항상 내가 빤 것을 처음부터 다시 빨았다. 겨울에는 빨갛게 언 손으로 빨래를 치대다가 등 뒤에 앉아있는 내가 물에 손을 넣지 않도록 주의를 주기 위해 돌아보곤 했다.

깊은 가을이 되면 언니는 갈비(소나무 낙엽으로 장작 밑불이나 밥 짓는 땔감으로 쓰임)를 하러 앞산에도 가고 뒷산에도 가고 했는데 내가 어디서 놀고 있건 꼭 나를 찾아서 데리고 갔다. 당시에는 내 또래 아이들도 겨울 땔감을 하러 산에 가는 것이 보통 풍경이었는데 나는 그저 갈퀴질을 하는 언니 곁에서 놀다가 작은 바구니에 솔방울만 조금 담아 오곤 했다. 가끔 우리반 남자아이와 마주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나무를 하러 온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솔방울 바구니위에 맹감나무 가지나 들국화다발 같은 걸 얹어오곤 했다. 공주가 나오는 동화책을 너무 많이 본 것일까, 나는 머리에 땔감 같은 걸 이어서는 안 되는 신분이라고 생각했으니 요즘 말하는 공주암 말기환자였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터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데 손에 갈쿠리와 새끼줄을 든 언니가 나를 부르지도 않고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방향으로 보아 앞산에 갈비를 긁으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무리 놀이에 빠져 있더라도 어떻게든 구슬러 데려가던 언니였기에 곧 되돌아와서 나를 데려갈 줄 알고 새침을 떨며 땅따먹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도 없기에 슬며시 고개를 들고 길 쪽을 바라보니 언니는 막 길 모롱이를 돌아 사라지는 참이었다. 갑자기 노는 것이 재미없어져 그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대문간을 서성이며 언니를 기다렸고 머리에 갈빗단을 인 언니가 나타나자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는 갈빗단을 받아 내리며 ‘아이구, 우리 숙이는 어디서 이리 기름진 갈비를 긁었을까’ 하고 칭찬을 했다. 언니는 우물가로 갔고 나는 마치 다리가 달린 해바라기처럼 언니를 따라갔다. 언니는 두레박에 물을 길어 올려 얼굴과 팔다리를 씻고는 나에게도 씻으라고 명령하였다. 내가 어수룩하게 코 세수만 하는 것을 보곤 주저앉더니 목이며 손등, 팔과 겨드랑이까지 뽀득 뽀득 문질러 씻어 주었다.

‘너는 그렇게 흙을 묻히고 놀면서 왜 좀 뽀득뽀득 못 씼냐.....’ 언니는 내 치마 끝을 팬티 고무줄 속으로 돌돌 말아 넣고 내 다리도 뽀득뽀득 문질렀다. ‘아이구, 이 땟국물, 까마귀가 보면 할아버지, 하고 쫓아오겠다’ 하고 엄마처럼 손바닥으로 정강이를 찰싹 때리기도 했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산에 나무 하러 가기를 기다려 따라 나섰다. 산길 양쪽으로 평평한 곳마다 무와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언니는 밭에서 벗어나 길섶 돌들 사이에 자란 무를 뽑아서 이빨로 껍질을 벗겨내어 내게도 내밀고 자기도 먹었다. 갈비가 수북한 산에 이르자 언니는 갈쿠리와 새끼줄을 내려놓고 모로 드러누웠다.

“좀 쉬었다 하자,”

나도 모로 누워 눈을 감은 언니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잠시 후 일어난 언니는 주변의 갈비를 긁어다져서 새끼줄로 돌려 묶었는데 그건 내 베개 보다 조금 큰 작은 갈빗단이었다. ‘이건 네 거야’라고 언니가 말했다. 나는 주변 산자락을 돌며 들국화를 꺾어다가 갈빗단을 장식했다. 꽃을 꺾어오면서 보니 언니네 반인 우리학교 선도부 대빵 오빠가 지게에 커다란 갈빗단을 지고 와 언니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 오빠는 언니에게 손만 들어보이곤 뛰어갔다. 언니는 들국화로 장식된 갈빗단을 내 머리에 얹어 주고 자기는 그 오빠가 건네 준 큰 갈빗단을 머리에 이었다. 산에서 길로 내려선 다음, 나를 앞세우고 뒤따라오던 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머리에 갈빗단을 이고 마을로 들어설 것이 걱정되어 조바심치던 나는 얼른 멈춰 섰다. 언니는 내 눈을 보며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그 때는 아무리 일학년이라도 교문을 통과하려면 운동장의 쓰레기를 한 주먹 주워서 선도부선배에게 검사를 맡아야 보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집에 가려고 쓰레기를 찾아서 커다란 운동장을 펄쩍 펄쩍 뛰어다니곤 했는데 나는 쓰레기도 줍지 않고 정문을 통과 할 수 있게 되었다. 선도부 대빵의 지시로 모든 선도부원이 공주의 자유로운 통행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맛은 진정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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